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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BOUT
강화화문석 이야기
강화화문석은 고려시대부터 최고품질의 평가를 받으며 지역특산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화문석의 유래

화문석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우리의 사계절을 지켜주었던 화문석

  • 고려시대 화개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 많이 자라는 왕골들로
  • 만든 방석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바닥에서
  • 겨울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 따뜻하게,
  • 4계절을 보낸것이 지금의 화문석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강화화문석이 된 이유

왜 화문석은 강화의 특산물이 되었을까?

    >
  • [고려도경 中 화문석에 대한 설명]
  •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

역사적배경

  • 39년동안 고려의 수도였던 강화(江華).당시 자리류 중 최상품이었던
  • 왕골돗자리는 강화로 이주한 왕실과 관료를 위해 제작되었고
  • 역사적으로 강화화문석이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온 가장 큰 배경이 되었습니다.

환경적배경

  •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왕골이 거친 해풍을 맞고 자라
  • 강하고 질겨, 자리를 만들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강화는 다른지방에서 생산되지 않는 순백색 완초(왕골)을 주재료로
  • 하기때문에 기품있는 질 좋은 자리를 생산해왔습니다.

화문석의 특별함

왜 화문석은 특별한 선물이라 여겨질까?

예술품으로 왕들이 사랑하는 진상품

  • 60만번의 손길에 장인정신과 예술성이 더해진 화문석은
  • 왕들이 꼭 찾는 진상품이었고, 자리류의 생산을 국가기관에서 담당하여야
  • 할 만큼 이에 대한 수요가 높았음을 말해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외국에 수출되고 사신에게 선물하던 극상품 화문석

  • ≪통문관지 通文館志≫에 따르면 한 번의 동지사행(冬至使行) 때
  • 중국에 보낸 화문석이 124장에 달하였으며, 우리 나라에 오는 관리들에게도
  • 적지 않은 양을 선사하였습니다.이에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 내지 선사품이 되었습니다.

화문석 제작

화문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60만번의 손길

  • 왕골 파종 - 모내기 - 거름주기. 제초하기 - 줄매기 - 수확하기- 건조하기 - 쪼개기
  • - 세척하기 - 건조하기 - 분류하기 - 염색하기 - 화문석 짜기 등 왕골의 재배부터
  • 화문석 제작까지 모든 제작과정에 약 60만 번의 정성이 들어갈
  • 정도로 정성이 깃든 수공예품입니다.

한장의 화문석이 탄생되기까지-

60만번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화문석

씨앗심기

4월-5월 상순에 씨앗을 뿌립니다.(파종)

모내기

묘를 건조하지 않게 관리하고
논 혹은 밭에 옮겨 심습니다.(이앙)

거름주기. 제초하기

왕골 줄기 발육에 도움을 주는 비료를 충분히 줍니다. 왕골이 60CM가량 자라면 2-3회에 거쳐 잡초를 제거합니다.

줄매기

왕골이 1M가량 자라면 쓰러지지 않게
줄을 묶어 고정시킨다.

수확하기

월경, 줄기를 꺾어도 끊어지지
않을 때가 되면 줄기를 잡고
뽑듯이 끌어올려 수확한다.

쪼개기.세척하기

전용칼을 사용하여 3등분으로 쪼갠 후 진흙, 철분, 유기질 등의 불순물을 제거한다.

건조하기

미백색 색상을 만들기 위해 쪼갠 왕골을 일정량으로 묶어 연탄불에 1-2일 건조합니다.

자연 건조하기

햇빛에 자연건조합니다.

분류하기, 왕골훑기

왕골은 겉대와 속대를 구분하고
겉대와 염색할 왕골을 골라
섬유질을 제거합니다.

염색하기

왕골을 끓여 여러가지 색으로 염색합니다.

자리엮기

고드랫돌을 이용해 왕골을 엮어
화문석을 만듭니다.

체험학습

화문석 체험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황후로 부터 유래된 왕골
목이 말라 물을 청한 왕건에게 우물가에 있던 여인이 급히 마시다 체하지 말라고
버들잎을 띄워서 물을 건네 준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 여인이 바로 장화황후입니다.
이 두 사람은 자리를 깔고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후 낳은 아들인 혜종의 얼굴에 돗자리와 같은 흉터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자리가 ‘혜종왕 얼굴에 골이지게 하였다’ 하여 ‘왕골 돗자리’라 부르게 된 것이죠.

나주 '완사천' 이미지출처(나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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